병역에 관한 단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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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에 관한 단견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05.19 09:31
  • 호수 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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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칼럼니스트
이  현  숙칼럼니스트
이 현 숙
칼럼니스트

 러시아 침공이 임박했을 당시, 외신 보도에 등장한 우크라이나의 한 여성 노인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총자루를 거머쥔 채 조국을 지키겠노라 결의에 찬 표정을 보며 한반도의 안보 현실이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불안한 평화가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국방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국방력의 핵심은 첨단 군사장비 못지않게 유사시 적에 대항할 능력을 갖춘 군사 규모에 있다고 본다.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은 약 50만 명의 상비군을 보유 중이다. 그런데 인구의 자연감소로 인해 병력 자원의 감소가 확실시되는 터라 향후 군병력 충원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가 관건이다.   
 국가 안보 체계가 무너지는 순간 국민의 평온한 일상도 함께 사라진다. 마땅히 국가 안보의 주체인 국군 장병에 대한 합리적인 예우가 필요하나 실상은 병역이행자 간에 오가는 동병상련의 위로가 거의 전부인 듯하다. 게다가 병영 생활에서 경험한 트라우마로 평생을 고통받고, 훈련소 시절 몸에 밴 3분 식사 습관으로 만성위장병을 앓고, 땀에 젖은 군화가 물려준 발가락무좀을 수십 년째 달고 사는 퇴역 장병의 삶에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병영 내 인명 사고에 대한 진상 규명과 사후 수습에 소극적이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군 사망사고 현황을 보면 자살에 의한 사망 595건을 포함한 전체 사망 건수가 893건이다. 전시 상황이 아니고서야 국가의 부름에 응답하여 국가를 위해 헌신했으면 국가가 책임지고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려보내야 한다. 멀쩡히 제 발로 군문을 걸어 들어간 쌩때같은 장정들이 왜 불귀의 객이 되어야 하는가.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은 징병제 국가로서 국민의 4대 기본의무(교육, 근로, 납세, 국방)에 국방 의무를 포함시켰다. 그런 만큼 병역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특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서로 다른 출발선` 같은 사회 현상에 반감을 가진 남성 청년층에게 있어 군복무는 공정의 기준이다. 병무 행정을 둘러싼 잡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병역 제도나 병무 행정의 혁신을 기대한다. 
 병역 제도가 신뢰를 얻으려면 병역판정검사에서부터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른바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고위층·부유층 자제들은 고가의 건강검진을 통해 단 몇 퍼센트의 유병 가능성까지도 스스로 입증하고 징집 면제된다. 반면에 `어둠의 자식들`에 빗대는 서민층 자제들은 신체 이상이 뚜렷해도 신체검사에서 꾀병 취급을 받는 경우가 있다. 징집 대상자 전원에게 동일한 정밀신체검사를 실시함이 공평하다고 판단된다.
 병역 특례 공정성은 늘 우리 사회의 논란거리다. 선수 생활이나 연예 활동에 제약이 따를지언정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의무를 당당히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팬 서비스인지도 모른다. 좀체 근절되지 않는 병역 비리도 마찬가지다. 최근 사건만 해도 갈수록 진화하는 병역 면탈 수법에 말문이 막힌다. 고의로 체내 연골을 제거하거나 뇌전증(일명 간질) 허위 진단을 받기 위해 연기를 펼치는 등 다양한 수법이 동원되었다. 병역브로커가 구속되고 현역 운동선수, 연예인, 법조계나 전문직 인사의 자녀들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정치권에 유독 병역 미이행자가 많은 점 또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병역 면제 사유를 보면 일반인들은 듣느니 처음인 병명 일색이다.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도 수행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에 충성 봉사한다는 말은 왠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치에 입문하려면 본인이든 가족이든 병역 문제부터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하는 게 최소한의 국민적 바람이다. 
 푸른 청춘의 한 조각을 국토 수호에 기꺼이 바친 대한민국 남성들의 고귀한 희생에 거듭 경의를 표한다. 이들의 값진 노고는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하며 그에 걸맞은 보상과 처우 개선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병역의 신성함에 대한 범국민적 인식이다. 이는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국민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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