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평, 비단 들판이 다시 복되게 출렁이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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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평, 비단 들판이 다시 복되게 출렁이길 꿈꾼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3.06.27 11:34
  • 호수 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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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구생활11 | 이동면 금평마을
금평마을 사람들. (왼쪽부터) 한호식 개발위원장, 제정숙 개발위원, 동두리, 하말심 씨, 최정숙 이장.
금평마을 사람들. (왼쪽부터) 한호식 개발위원장, 제정숙 개발위원, 동두리, 하말심 씨, 최정숙 이장.
금평마을 표지석 뒤로 보이는 마을 전경. 모내기한 논빛이 푸릇푸릇하다.
금평마을 표지석 뒤로 보이는 마을 전경. 모내기한 논빛이 푸릇푸릇하다.

 이동면 금평마을로 들어서자 넓은 논밭과 하우스 단지가 군데군데 눈에 들어온다. 수년간 가뭄이 들어도 이 들에서는 풍년이 들어 이듬해 농사를 망친 곳까지 씨앗을 나눠 줄 만큼 물이 좋은 복 받은 골짜기라 불리던 복곡(福谷) 들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벼, 단호박, 마늘, 시금치 농사를 짓고 비닐하우스에서 열무, 파, 콩, 블루베리 등을 재배한다.
 20년 전부터 친환경 농작물 하우스를 시도해 지금까지 해오고 있지만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 20년 전 마을 주민 양 모 씨가 친환경 야채를 재배해 중국에 수출하겠다고 시작했는데 여건이 어려워 그만두게 됐지요." 한호식(75) 마을 개발위원장의 말이다. 이후 한금석 전 이장이 맡아 운영하다가 그마저도 힘들어져 한두 동씩 개인에게 분양을 내줬다고. "친환경 농사든 무슨 농사든 인력이 없어 이어 나가기가 어렵지요. 지금은 대부분 소농에 고령농입니다." 
 어업은 거의 안 하는 상태다. 마을로 귀어한 주민 한 사람이 배를 사서 나섰지만 배 한 척 댈 자리조차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제는 이웃마을 선창에 배를 대고 있다.

금평마을 사람들. (왼쪽부터) 한호식 개발위원장, 제정숙 개발위원, 동두리, 하말심 씨, 최정숙 이장.
금평마을 사람들. (왼쪽부터) 한호식 개발위원장, 제정숙 개발위원, 동두리, 하말심 씨, 최정숙 이장.

 최정옥(61) 이장에 따르면,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은 행정상으로는 100가구 정도 되지만 실제 거주 주민은 60여 가구에 75명 정도이고 90%가 70세 이상이라고 한다. 이렇듯 금평마을도 고령화와 인구소멸의 시대적 흐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최정옥 이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가 이 마을의 막내였는데 저보다 젊은 사람 몇 집이 귀촌을 해왔어요." 도시로 출퇴근을 하거나 주말농장처럼 가끔 오거나 펜션을 차려 운영하는 이들도 있고, 제대로 정착해보겠다며 농사도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일을 벌이는` 이도 있다. 기존 주민들은 마을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게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쇠락한 마을, 희망처럼 흐르는 금평천
 금평마을은 금산의 `비단 금(錦)`에 넓은 들이 있어 `들 평(坪)`을 붙일 만큼 남해 섬의 옥토 지대라 할 만하다. 앞서 말했듯 가뭄에도 골짜기 물이 끊기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해서 `복곡` 또는 `복골`이라고도 불렸다. 이 복골을 따라 마을의 젖줄 같은 금평천(錦坪川)이 금평, 신전 들의 한가운데를 지나 앵강만으로 흐른다. 앵강만 갯벌에서는 바지락, 개불 같은 어패류가 많이 잡혔지만 이제는 산업화로 인한 오염 탓인지 모두 씨가 말라 한때 연간 돈 천만 원 하던 마을소득이 사라져버렸다.
 금평마을은 벅시골, 앳골(재골), 송정골 세 마을로 이뤄져 있으며 1950년대에 신전리에서 원천과 함께 분리됐다고 한다. 벅시골은 금평마을 위쪽에 있고 마을 입구에 벅시(장승)가 세워져 있다고 해서 `벅시골`, `시골`로 불린다. 마을 뒤로 남해장성이 복골로 이어지고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지금도 장승이 세워져 있다. 앳골은 옛날에 기와를 굽는 곳, 가마터가 있어 `지앳골` 또는 `재골`이라고도 불린다. 송정골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아 이곳에서 송진을 짜 나라에 바쳤다 해서 유래했으며 `솔정`이라고도 부른다. 
 그런가 하면 금평마을은 1980년대 고발문학의 대가로 평가받는 고(故) 정을병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반 필화(筆禍) 사건을 겪으며 정작 고향인 남해와 금평에서는 여전히 외면받고 있지만 국내 문단에서는 현대문학상, 한국소설 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등을 수상하며 그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남해도서관 주최로 `남해의 작가 정을병, 다시 읽다` 인문학 포럼이 지역 문인들과 한국소설가협회 등 전국의 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배문학관에서 열렸다. 2015년 정을병 문학비를 세우려던 시도가 무산된 이후 8년 만에 고향 남해에서 그의 문학적 성과를 재평가하고 남해군민과의 화해 계기를 마련한 자리였다.

비좁고 울퉁불퉁한 마을 안길. 정비가 시급한 길들이 곳곳에 있다.
비좁고 울퉁불퉁한 마을 안길. 정비가 시급한 길들이 곳곳에 있다.

마을회관 다시 열고 태양광 설치
 최정숙 이장은 마을 이장직을 맡은 지 올해로 3년이다. 최 이장은 17년 전 금평 출신인 남편을 따라 이 마을에 정착하고 농부의 아내로 살았다. 마을 주민들은 도시 여성이던 그에게 처음엔 그리 살갑지 않았다고. `도시서 살지 뭐 하러 내려왔노` 그랬다. "처음엔 너무 곁을 안 줘서 애를 먹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사는 게 그리 나쁘지 않더라고요. 남해가 너무 예뻐서 시집왔지요."
 요즘 마을 사람들은 최정숙 씨가 이장직을 맡으면서 마을이 화기애애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마을회관에 경로당이 있지만 그곳이 문을 열고 어르신들이 모인 건 지난해부터라고. "이전에는 아예 문이 잠겨 있었어요. 모이려고 해도 코로나 때문에 못 모이다가 작년에 가을 일 하기 전 20명 넘게 모여 한두 달을 같이 신나게 놀았어요." 작년 겨울에도 모여 함께 어울려 노는 즐거움을 맛봤다. 이제는 어르신들이 회관에 모여 같이 밥도 해서 먹고 저녁까지 어울리다 가는 일이 일상이 됐다. 최 이장이 앞장서 나서준 덕이다. 

벅시(장승)거리에서 본 마을과 앵강만.
벅시(장승)거리에서 본 마을과 앵강만.

 최 이장은 시급하게 추진할 마을 일로 마을 안길 사업을 꼽는다. "어르신들이 나이가 들고 다리 힘이 없다 보니 보행기와 지팡이에 의지해 다녀요. 우리 마을 안길은 지금도 새마을 사업 때 만들어놓은 좁은 길 그대로이고 다시 포장한 적이 없어 정비가 절실합니다. 어두운 길 밝혀줄 가로등도 설치하면 좋고요." 그가 마을사업으로 마을회관 앞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은 설치비용 상환이 끝나면 쏠쏠한 마을수익이 되어줄 전망이다.
 최 이장은 무엇보다 마을의 화합을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이장이자 마을 활동가라면 마땅히 조력자가 되고 심부름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조력자가 나선들 아무도 함께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마을 주민들끼리 우선 소통하고 화합해야 무슨 일이든 도모하고 그림을 그릴 수가 있습니다."
김수연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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