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쏟아지는 여름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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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쏟아지는 여름밤이여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07.21 11:18
  • 호수 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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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세이 │ 이현숙 칼럼니스트
이  현  숙칼럼니스트
이 현 숙
칼럼니스트

 `잠이 보약`이라는 말에 백배 공감하지만 안 자는 게 아니라 못 자는 상황에서는 나날이 쌓이는 `수면 부채`를 멀뚱히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잠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면서 불가항력적인 영역이다. 결코 인간의 생각이나 의지에 따라 통제되고 말고 할 대상이 아니다. 수면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바닥에 등이 닿기 무섭게 곯아떨어지는 사람들은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헤아리는 심정을 모른다. 생업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수면 시간을 줄인 경우는 그나마 나을 수도 있다. 잠자고 싶은 욕구가 있고 잠잘 시간이 있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인생 최고의 호사는 단잠이 아닐까 한다. 
 인체 내 생체 시계는 아침 햇빛을 받고 15시간이 지나면 잠에 빠지도록 설계되었다. 수면 전문가들은 규칙적인 취침과 기상, 주간의 활발한 신체 활동 등을 강조한다. 그런데 경험상 생체 시계의 고장 여부는 어떻건 간에 수면 수칙을 잘 지킨다고 반드시 숙면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꿀잠`을 책임진다는 수면 베개나 수면 보조제 같은 수면 비법들이 항간에 넘쳐나는데, 잠 못 드는 이들의 실낱같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까 우려된다.

 알려진 바와 같이 호르몬 변화는 수면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이 감소하면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생성이 억제됨으로써 수면 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편 육아를 하는 여성들은 `엄마 귀`가 발달하는 영향으로 잠을 자면서도 아기의 움직임에 반응하느라 정상적인 수면 리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수면의 또 다른 방해꾼은 불안과 근심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거리와 밤새 씨름하다 보면 밤잠을 도둑맞고 만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는 티베트 속담이 있다. 적어도 잠자리에서만큼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단호히 쫓아내야 한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울 것 같으면 걱정이란 단어는 진작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수면 부족의 부작용은 단순한 피로에 그치지 않는다. 만성화되면 면역력이 저하되고 질병에 취약해지며 뇌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지게 된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뇌신경세포가 손상되고 결국 기억을 잃게 된다고 한다.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를 보면 잠을 자는 동안 뇌세포 간격이 벌어지고 그 틈새로 노폐물이 뇌척수액에 의해 씻겨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치매를 유발하는 물질이 뇌에 축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양질의 수면이 필요하다.  

 신생아는 젖 먹는 시간 외에는 거의 잠을 잔다. 잠에서 깨어 칭얼대다가도 안아 주거나 요람에 태워 살살 흔들어 주면 다시 잠든다. 누구나 어려서는 잠이 안 오는 괴로움을 상상도 못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수면 장애를 겪게 된다. 여하간 토막잠이건 토끼잠이건 벼룩잠이건 가릴 처지가 아니라면 아기 재우기 응용법, 즉 바다에 띄운 통통배에 누워 찰랑대는 파도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상상이라도 해 보자.  
 그건 그렇고 가족과 사회를 위해 밤잠을 헌납한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감동을 숨길 수 없다. 납품 기일에 맞춰 밤샘작업에 매달리는 사업장의 근로자들, 국토 최전선에서 야간 경계근무 중인 국군장병들,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의 연구원들, 집어등을 환히 밝힌 채 바다에서 조업하는 어부들, 밤새 고속도로를 달리는 화물 운송 기사들, 전국의 사찰과 교회와 성당에서 철야 기도하는 신자들, 깊은 밤 적요한 시간에 저마다의 이유로 잠들지 못하는 이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노라면 어떤 연대감이 느껴진다. 
 창밖의 가로등이 밤새 어둠을 밝히는 동안, 필자는 잠과 깊은 사랑에 빠지는 대신 책 읽고 글 쓸 시간을 번 것에 그런대로 만족한다. 그래도 오늘만은 왠지 별도 쏟아지고 잠도 쏟아지는 한여름 밤의 열기 속에서 잠꾸러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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