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과 하얼빈(上)
상태바
안중근과 하얼빈(上)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08.17 16:49
  • 호수 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78주년 광복절 특집 기고 │ 장현재 본지 칼럼니스트·삼동초 교사
장  현  재본지 칼럼니스트삼동초 교사
장 현 재
본지 칼럼니스트
삼동초 교사

 제78주년 광복절이 다가온다. 대지를 태울듯한 태양의 열기로 가득한 날, 유배문학관 벽면에 걸린 대형 태극기를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항상 보는 태극기이지만 지난 밤 세 번째로 읽은 하얼빈의 `코레아 후라`란 말 때문에 그 의미가 새로워진다. 저 태극기를 되찾으려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이 애써왔던가?
 하얼빈 소설은 지난해 10월 부산 서면의 고층 건물에서 보호자로서 안과 수술 후 회복을 기다리는 8시간 동안 완독했다. 그 후 고개를 들었을 때 가을바람 이는 파란 하늘에 31살로 숨져간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소설 속 안중근 의사는 영웅도 아니었다. 젊음을 지고 독립을 갈망하는 대한국인의 한 사람이었다
 김 훈 작가는 이 소설을 50년 전부터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조사와 답사를 거쳐서 풀어낸 이야기는 사실성에 근거한 일들을 짧은 톤으로 꾸미지 않은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안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 전후의 일상과 여순감옥에서 사형당하기까지의 내용과 후기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절제된 언어로 비장함이나 불같은 분노마저도 누르고 오로지 기록된 사실만을 근거로 서사를 꾸려간다. 

안중근 의사

 작가는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안중근, 우덕순의 행적과 내면을 통하여 읽는 이에게 던지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위대한 영웅의 서사시도 아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한 가정의 가장이요 나라를 빼앗겨 독립의 빛을 좇는 젊은 안중근의 내면을 풀어놓은 것이었다.
 하얼빈을 읽으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정의란 기준의 모호성과 가진 자의 카멜레온 같은 처세술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여순감옥을 통하여 신이 인간을 만드셨다고 하는데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잔인한 악마 근성의 한계점이 어디까지일까였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 편에서 기술 되어졌다. 정의의 의미도 언제나 힘 있는 자의 것이었다. 그 예로 전쟁을 보면 된다. 개인이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더라고 승리하면 정당화된다. 지금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다툼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북·중·러와 한·미·일의 신냉전 구도를 보면 힘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 힘의 원리는 유엔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유엔은 미국이 주도하는 합법화된 힘 있는 나라의 깡패집단이 모여 폭력과 전쟁을 당연하게 만드는 기구라고 전 정세영 통일부 장관이 `통찰`이라는 책에서 피력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저격후 체포되어 여순감옥에 이송후 6번에 걸쳐 재판을 받은 `여순 일본관동법원구지`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저격후 체포되어 여순감옥에 이송후 6번에 걸쳐 재판을 받은 `여순 일본관동법원구지`이다.

 나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을 두 번 방문한 기억이 있다. 처음 찾을 때는 장마가 한창인 2011년 7월이었다. 여순항이 내려다뵈는 203고지 기념탑을 보며 노기마레스키가 이끄는 6만의 일본군 희생이 피로 흘러내렸음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는 이토가 대련을 방문하였을 때 환영식에 참석한 일본 여성들 사이에 203머리 스타일이 유행했다는 부분을 보며 허탈함이 몰아쳤다. 그리고 여순감옥을 둘러보며 일제의 잔악성에 몸부림쳤던 기억을 되감았다. 숨을 쉴 수 없는 밀폐 공포감과 어둠, 눅눅한 공기와 곰팡내, 죽음의 손길과 신음이 감방 곳곳에 배어 있었다. 그리고 독방, 암방, 고문 도구를 보면서 지능을 가진 인간이기에 사람의 약점을 더 비집고 들어가 고통을 주는 영장류의 악마 근성에 소름이 절여왔다. 마치 영화 밀정에서 망치로 발가락을 깨고 인두로 얼굴을 지지는 일본 순사의 그 모습이었다. 
 여순감옥에서 제일 충격적인 장소는 아쉬움이 이슬로 떨어진 사형장이었다. 부슬비를 맞으며 사형장을 보기 위해 일행과 함께 걸음을 옮길 때 얼굴은 전부 굳어있었다. 소설에서 안중근 의사는 용수 대신 하얀 종이 고깔이 씌워져 독방에서 사형장으로 옮겨졌다했다. 안 의사는 어머니 조마리아가 지어준 하얀 상의와 검은 바지를 입고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를 생각하며 얼마나 많은 상념 속에 걸음을 옮겼을까 생각하니 온몸이 감전된 것 같았다.
 사형장 내부에는 3개의 도르래에 교수형 장치가 되어 있고 마룻바닥을 네모로 구멍이 나 있다. 그 아래는 둥근 통이 있는데 사형집행 때 나오는 배설물 처리와 관 대용이라 했다. 일제는 그 작은 통에 시신을 넣으며 무릎이 굳어져 꺾이지 않으면 염산으로 녹여서 넣었다고 한다. 사형장을 나오며 자신이 죽으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해 달라고 한 안중근 의사 유언을 떠올렸다. 일제는 안중근 의사 죽음의 후폭풍을 두려워하여 시체를 인도하지 않고 감옥 공동묘지 야산에 암매장하였다. 그 장소로 추정되는 곳엔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유해를 찾을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두 번째 방문은 2018년 8월의 뙤약볕 아래였다. 여순시의 팔월 한낮은 열기와 발해만의 습기로 매미 소리도 지치게 했다. 빙 둘러쳐진 붉은 벽돌담 속에 숨져간 독립투사의 원혼을 달래려면 씻김굿이라도 하여 이 응어리가 내려갈까?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은 벌겋게 단 무쇠를 밟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안중근 의사 추념관을 찾았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은 의사의 흉상을 제대로 볼 면목이 없었다. 그 좁은 공간에 130명의 일행은 고개를 숙이고 준비한 국화를 한 송이씩 드렸다. 땀이 비 오듯 흐르지만 그 누구도 힘든 표정은 없었다. 다시 둘러보는 여순감옥은 또 분노를 쥐어짰다. 여순감옥, 선양의 9.18 기념관, 서대문형무소,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가면 특유의 냄새와 전시된 인간의 잔악성은 신이 피조물인 인간을 잘못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15면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