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저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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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저금통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09.04 11:04
  • 호수 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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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놀러 간 친구 집에서 라면을 상자째 사서 두고 먹는 걸 보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어쩌다 아버지께서 라면 몇 봉을 사 오시신 저녁은 다음날을 기다리느라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연탄 위의 라면 냄비는 쉬이 물이 끓지 않아 안달이 나곤 했다.  
 친구가 나눠준 껌은 온종일 씹었고 공부 시간은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으려 책상 밑에 붙여 두기도 했었다. 쉬는 시간에 다시 찾아 씹으면 다행이지만 놀이에 정신이 빼앗겨 잊어버린 껌들은 하나둘 늘어 교실 모든 책상의 하단은 눌어붙은 껌들로 빈틈을 찾기 힘든 상태가 되어 버렸다. 
 모든 게 먹고 싶었던 그 시절 유일하게 한 번씩 과자를 나누어 주던 친구에게 용돈을 받느냐고 물었더니 집에 있는 부모님의 돼지 저금통에서 조금씩 꺼내 온다고 말했다. 붉은색 플라스틱 돼지저금통의 투입구에 젓가락을 넣어 거꾸로 흔들어 나온 돈 중 오백원짜리 하나만 챙기고 나머지는 다시 넣어 들키지 않는다고 한다. 단 오백원짜리는 크기 때문에 정말 꺼내기 힘들다며 기술력을 자랑하는데 그마저도 부러웠던 기억이다. 
 그때의 애들이 어른으로 성장해 부모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됐고 과자와 라면은 흔해지다 못해 이제는 식탁 위에 굴러다닌다. 과자를 먹으려 사는 것보다 봉지 속에든 게임이나 만화 스티커를 가지기 위해 구매하는 애들이 늘어간다. 과자봉지를 뜯어 스티커만 꺼내고는 받은 잔돈 중 십 원짜리와 과자는 쓰레기통으로 바로 던져버리는 현실이다. 화장대와 딸들의 방구석에서 외면받는 동전들을 바라보다 그 옛날 돼지저금통을 몇 개 사 왔다. 동전이 가치 없어진 만큼 행복도 멀어진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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