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언 땅, 한 그루 헐벗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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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언 땅, 한 그루 헐벗은 나무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08.17 13:00
  • 호수 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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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정을병을 기리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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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소설가 공애린
공  애  린소설가
공 애 린
소설가

 정을병 선생은 경남 남해군 이동면 벅시골 출신이다. 예로부터 인재를 많이 배출한 남해인들은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중학교 담임은 범상치 않은 소년 정을병의 습작을 읽고 일찌감치 작가로서의 대성을 예감했다고 한다. 
 결국, 1974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그는 주로 체험을 토대로 한 고발소설을 써왔다. 국토건설단에 자원하여 직접 겪은 건설단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친 `개새끼들`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지만, 정권에 밉보였던 그는 문인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그 체험은 또다시 옥중소설을 낳았다. 그가 세상을 뜬 2009년에서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정을병 선생의 무고한 옥살이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재심을 권고했고, 2년 후 사건 37년 만에 망자가 된 정을병 선생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처럼 몸을 사리지 않고 거침없이 글을 썼던 그는 한때 `월간 중앙 필화 사건`으로 고향 남해군민들과 불화를 겪기도 했다. 고향을 폄훼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그는 후회했지만, 적극적인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짐작건대 늘 소설의 감옥에 갇혀 지냈던 그였기에 자신을 변명할 여유조차 없었으리라. 하지만 고향에서 옮겨온 뜰의 황매화만큼이나 그가 남해를 사랑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소설가 정을병은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라 불릴 만큼 독서광이었다. "책은 인간 내면의 얼음을 깨는 도끼다"라는 카프카의 말처럼 누구보다 책의 소중함과 독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그는 독서운동 단체인 스피드 리딩 협회를 만들었고, 『독서와 이노베이션』이라는 책마저 출간했다. 
 이후 소설가협회 이사장직을 맡게 된 정을병 선생은 책조차 쉽게 살 수 없는 소설가들의 궁핍함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고, 그러한 눈앞의 현실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던 탓에 발 벗고 나섰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 절망의 해독제가 행동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여러 단체를 직접 뛰어다니며 지원을 호소했고, 그렇게 굵직굵직한 지원금을 얻어내 가난한 소설가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원고료를 지급하고자 노력했다. 당연히 활동비가 필요했고, 그는 부하 직원이 이사장 명의로 된 공식적인 통장으로 입금한 돈을 떳떳하게 받았다. 비자금이 아니라 활동비였기 때문에 차명계좌 따위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아예 비자금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사실 그는 소설밖에 모르는 `바보`였다.
 무전략보다는 잘못된 전략이 낫다는 말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어떤 일이든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 낫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실패한 창업자를 `경험 있는 창업자`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결과 앞에서 피땀 흘리며 노를 젓는 과정에서의 수고로움과 공적은 쉽게 간과되고 과오나 실책만 부풀려지는 현실과 종종 마주치게 된다. 게다가 무사안일만 외치며 복지부동이었던 사람들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배를 채우려 드는 모습이란. 그럴 때면 인간의 냉혹함과 위선에 공포감마저 느끼게 된다. 외부의 적이 없으면 내부의 적이라도 희생양으로 만들어야 하는 서글픈 속성 때문일는지.
 그 일로 또 한 차례 수인이 되었던 정을병 선생은 투옥 생활 중에도 출소 후에 소설다운 소설을 쓰겠다고, 꼭 백 살까지 살아서 진실을 제대로 표현한 작품을 남기겠노라고 투지를 불태웠다. 누명을 벗고 감옥을 나온 후에도 그는 자신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그 어떤 몸짓도 보이지 않은 채 묵묵히 글을 썼다. 무죄인데 억울하지 않으냐는 물음에도 횡령죄는 무죄라도 진짜 죄가 교만이라고, 지주 집안 출신의 자신에게 우쭐대고 잘난 척하는 교만의 유전인자가 있었던 것 같다며 자신을 스스로 낮추었다. 그럼으로써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을 실감케 했다.
 많은 것을 잃었음에도 비굴함 없이 소신껏 삶을 지탱했던 그도 질병이라는 복병만은 피해갈 순 없었다. 평소 술 한 방울조차 입에 대지 않았던 그였지만 간암이라는 덫에 덜컥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질병 따위에 굴하지 않고 자전적 소설인 『수행』을 온 힘을 다해 집필했다. 유고작인 소설의 「살아남은 자의 고독」 편에서 그는 평생을 구도자적 자세로 살아온 자만이 지닐 수 있는 승화된 내면을 담담하게 내보였다. "지옥, 그것은 타인이다"라고 말했던 사르트르와는 또 다른 삶의 철학을 글로써 피력했다.
 그날, 제막식 후 안산공원 입구 음식점에서 조촐한 뒤풀이가 있었다. 접시에 담긴 순수한 천연 색감의 요리를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오래전 정을병 선생께서 몇몇 문인들을 광화문 연포탕 집으로 불러 매생이국을 사주셨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고향 남해의 바닷냄새가 물씬 풍기는 연포탕과 매생이국에 그저 행복해하시던 소탈한 모습, 개구쟁이 소년 같은 미소를 영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애통하고 슬펐다. 불현듯 내 머릿속에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탄생시킨 마들렌 과자가 떠올랐다. 기억의 단서는 생각했던 것보다 소박하고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그때 광화문 식당에서 난생처음 맛보았던 초록빛 매생이국. 이후 매생이국은 고인을 떠올리는 에메랄드빛 기억의 통로로 굳게 자리 잡았다. 
 식당을 나오면서 먹먹한 심정으로 또 한 차례 안산공원의 언덕을 올려다보았다. 고인의 숨결이 밴 산책길, 그 양지바른 곳에 세워진 소설가 정을병 문학비는 한 그루 겨울나무였다. 언 땅에 뿌리를 내린 겨울나무는 마침내 도래할 봄의 따스한 햇빛을 기다려 왔다. 옛집의 뜰을 꿋꿋이 지키는 황매화처럼. 
 문단의 거목, 소설가 정을병은 다시 살아났다. 불멸의 존재로. 그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작가 소개

중앙일보사 주최 여성중앙 현상공모 당선.《시간꽃》《그대 그리운 날에는 길 떠나리 1,2권》《또 다른 사랑》《직지 앤 나비》《가면올빼미》 등 10권의 장편소설과 《다리, 넌 뭐야?》소설집, 그림동화집을 출간했다.

공애린 작가는 4월 21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린 남해도서관 인문학 포럼 `남해의 작가 정을병, 다시 읽다`에서 객석 발언을 통해 "정을병 작가는 서울의 한 집에서 40년 넘게 살았다. 왜 이사를 안 가느냐고 물으니 마당에 심어둔 고향에서 옮겨심은 황매화 나무 때문이라고 했다"며 정을병 작가가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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