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을병은 굳건히 뿌리내린 한 그루 나무였다
상태바
소설가 정을병은 굳건히 뿌리내린 한 그루 나무였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08.10 15:40
  • 호수 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故) 정을병을 기리며 1
-----------------------------
특별기고 │ 소설가 공애린
공  애  린소설가
공 애 린
소설가

 2016년 3월 23일 오후 3시 서대문구청 앞. 소설가 정을병 문학비의 제막식을 위해 앞다투어 모여든 문인들은 안산공원 자락길을 천천히 걸어 올랐다. 생전의 고인이 즐겨 찾았던 공원 길섶엔 어느새 봄의 전령사 영춘화가 수줍은 듯 피어나 있었고, 어디선가 그가 불쑥 나타나 특유의 박력 넘치는 악수를 청할 것 같았다. 문득 골고다의 언덕길이 떠올랐다. 그랬다. 소설가 정을병, 그는 평생토록 소설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언덕길을 오른 문학의 순교자나 다름없었다.      
 안산공원 느티나무길 입구, 제막식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소설가 정을병 문학비는 침묵 속에서도 빛났다. 고인이 평생을 놓지 않았던 펜촉과 그의 자유로운 영혼을 뜻하는 한 마리 새, 고인의 응축된 삶을 나타내는 펜촉 안 새의 알 형상으로 기하학적인 미를 듬뿍 자아냈다. 그동안 문학비 건립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 오신 백시종 건립추진위원장을 비롯해 문석진 서대문구 구청장, 김지연 소설가협회 이사장, 신세훈 전 문인협회 이사장, 이강흥 전 서대문구 문인협회 회장, 김봉군 문학평론가, 김형섭 조각가, 그 밖의 50여 명 문인은 이 뜻깊은 자리에서 고 정을병 선생에 대한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신의 은총 같은, 어쩌면 정을병 선생의 진짜배기 미소 같은 3월의 햇살이 제막식 내내 소리 없이 쏟아져 내렸다.  
 문득 15년 전 김포공항에서의 봄 햇살을 떠올려 보았다. 그날, 5월의 햇살만큼이나 들뜬 마음으로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일행들은 2001년 5월 18일 윌셔 래디슨 호텔에서 열린 미주 이민 백 주년 작품집의 출판기념회 겸 세미나에 참석했다. 문인 80여 명이 참석한 기념식장에서 소설가협회 정을병 이사장은 첫 이민소설집 발간의 역사적 의미와 그간의 재정적 고충,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호기 있게 밝혔다. 그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고,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형형했다. 그의 포부와 사명감에 대해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언뜻 보면 차갑게 보였지만 웃을 때 눈가에 주름이 지는 그의 진짜배기 웃음, 손을 내밀어 놀랄만한 악력을 전하는 진짜배기 악수 때문에. 당시 그 누가 예측했으랴. 몇 년 후 그에게 연이어 불어닥칠 모진 풍파와 비운을.    
 

 나는 이제 신과 한 덩어리가 된다. 한 방울의 물이 바다와 합치듯이. 내 인생 속에 들어온 모든 경험은 모두 내게 책임이 있었다. 나는 그 책임을 이 글을 쓰면서 용서받고 싶다. 그리고 감사하고 사랑한다. 
 

 2008년 10월에 쓴 이 글을 끝으로 정을병 선생은 앞서간 부인과 아들 곁으로 서둘러 떠났다. 2009년 2월 18일, 저녁 7시.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였다.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 줄 알았던 그였지만 커다란 착오였다. 세월이 흘러도 소설가 정을병은 잊히지 않았다. 굳건히 뿌리를 내린 한 그루 나무처럼 우리 곁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작년 연말, 동아일보 사설에서 정을병 선생의 소설 「육조지」가 언급되었다. 1974년 『창작과 비평』에 실린 「육조지」의 `순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진다. 판사는 미루어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마누라는 팔아 조진다.`는 대목에서 `판사는 미루어 조진다`라는 문구를 빌려 법안 처리를 미루는 여야지도부에게 쓴소리를 내뱉은 터였다. 그는 떠났지만 남은 이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한 자 한 자 피를 토하듯 내뱉은 절규를.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행복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으면 파랑새는 떠나간다. 다른 무언가에 몰두해야만 비로소 파랑새의 행복 세레나데를 들을 수 있다. 소설가 정을병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몰두할 소설이 있었고, 그것을 위한 투철한 작가 정신이 있었다. 그는 문학이라는 심오한 종교를 가졌고, 날마다 소설의 제단 앞에 피 토하듯 기도를 올렸다.    
 소설을 쓰기 위해 그는 수도승처럼 살았다.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고, 쌀과 김치, 연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루 한 끼 식사만으로도 배고프지 않았고, 어쩌다 광화문 뒷골목의 연포탕 집을 찾는 것이 낙이었다. 평소 요가와 명상, 난 기르기를 즐겼지만 잡다한 세상살이에는 관심이 없어 신문 읽는 시간조차 아꼈다.  
 그는 구파발 산 아래 고옥에서 40여 년을 살았다. 많은 이들이 개발붐과 시세 차익을 위해 이곳저곳 철새처럼 둥지를 옮기는 동안 오래된 집 뜰의 황매화처럼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겨울나무가 잎을 떨어뜨려 최소한의 영양분으로 존재하듯 많은 것을 버린 채. 누군가가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사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고향 남해에서 옮겨 심은 황매화 때문에 이사를 못 한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했지만, 실은 소설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문학이라는 신을 섬겼기에 70여 권의 소설책을 제단 위에 바칠 수 있었다. 신문학 백 년 동안에 가장 많은 책을 낸 작가가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작가 소개

중앙일보사 주최 여성중앙 현상공모 당선.《시간꽃》《그대 그리운 날에는 길 떠나리 1,2권》《또 다른 사랑》《직지 앤 나비》《가면올빼미》 등 10권의 장편소설과 《다리, 넌 뭐야?》소설집, 그림동화집을 출간했다.

공애린 작가는 4월 21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린 남해도서관 인문학 포럼 `남해의 작가 정을병, 다시 읽다`에서 객석 발언을 통해 "정을병 작가는 서울의 한 집에서 40년 넘게 살았다. 왜 이사를 안 가느냐고 물으니 마당에 심어둔 고향에서 옮겨심은 황매화 나무 때문이라고 했다"며 정을병 작가가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