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비경과 전설을 품은 마을, 고령화 파고에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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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비경과 전설을 품은 마을, 고령화 파고에 맞서
  • 김수연 시민기자
  • 승인 2023.10.02 10:19
  • 호수 8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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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구생활 14 | 상주면 대량마을

남해시대는 남해군마을공동체지원센터와 함께 지난해 11월부터 `마을탐구생활`을 연재하고 있다. 마을공동체지원센터는 마을자원조사와 각종 마을지원활동을 통해 축적한 자료를 제공하고 남해시대와 함께 마을주민들을 찾아 취재를 진행해왔다. 남해군에는 221개의 마을이 있다. 남해시대는 마을을 지키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해지역 역사를 기록하고 마을공동체 발전을 돕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14번째 마을로 상주면 대량마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대량마을 해안가에 펼쳐진 주상절리의 일부. 이 주상절리는 숨겨진 남해의 비경으로 제주도보다 지질학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대량마을 해안가에 펼쳐진 주상절리의 일부. 이 주상절리는 숨겨진 남해의 비경으로 제주도보다 지질학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아름다운 구운몽길, 곳곳엔 마을 전설이
 상주면 대량마을은 우리나라 남단의 섬 남해군 안에서도 더 깊숙하고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바닷가 마을이다. 남해안 관광지로 유명한 금산과 상주은모래비치를 지나는 19번 국도(남해대로)에서 한참 벗어난 위치 탓에 아직 찾아오는 외지인의 발길이 드물지만, 그만큼 천혜의 비경(秘境)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대량마을에 있는 남해 바래길 3코스 `구운몽길`은 1코스 다랭이지겟길과 함께 대표적인 남해 바래길이다. 바래길을 통해 주상절리(바위기둥) 협곡인 비룡계곡이 많이 알려졌다. 실제로 가보면, 비룡계곡뿐 아니라 해안가 곳곳에는 제주도보다 지질학적 가치가 크다는 주상절리 군락이 장관으로 펼쳐져 있다. 9.3㎞의 해안선을 따라 생긴 5개의 자연동굴이 있고, 기둥처럼 솟은 바위인 기둥방 남쪽을 바라보면 바다 한가운데 소치섬이 우뚝 솟아 있다. 마을 서남쪽에는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 유명한 노도가, 뒤편에는 덕의산이 자리하고 있다. 

대량마을 사람들. 왼쪽부터 김영문 개발위원장, 김동윤 전 이장, 김범준 이장.
대량마을 사람들. 왼쪽부터 김영문 개발위원장, 김동윤 전 이장, 김범준 이장.

 김범준(68) 이장은 "지금은 마을주민들이 찾아오는 손님들께만 알려주는 마을바래길도 있어요. 마을 공동묘지를 지나 암매산 해안가 주상절리를 보면서 산길을 따라 마을회관 앞 방파제로 연결되는 길인데 길이 험해 정식 바래길에서는 빠졌지요"라고 말했다. 
 워낙 신비로운 기암절벽과 바위, 동굴이 곳곳에 있다 보니 각 주상절리마다 흥미로운 이름이 붙어 있고 그에 얽힌 구전설화와 전설도 많다. 비룡계곡의 기둥방, 매머리, 악어바위, 거북바위, 거북동굴 메주바위를 비롯해 누룩처럼 생긴 주상절리들로 형성된 바위가 바다에 떠 있어 누룩방, 누룩방섬이라 불리는 것도 있다. 특히 용처럼 길게 누운 용왕바위, 거북바위, 용이 승천하며 비늘로 깎아놓은 듯한 수직 절벽이 생겼다는 기둥방에 얽힌 구전설화가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천혜의 맑은 바다에서는 톳, 미역, 청각 등 자연 해초와 문어, 장어, 전복, 해삼, 고동, 성게 등 해산물이 많이 나고 볼락, 감성돔이 많이 잡혀 대량마을엔 사시사철 낚시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량마을은 400여 년 전 경기도 임진강가의 양아리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살게 된 사람들이 이전 거주지명을 그대로 가져와 부르면서 양아리가 됐다. 이중 큰 양아를 `대량아`, `대량`, 작은 양아를 `소량`이라 불렀다. 정변으로 인해 관료나 학자들이 귀양을 오거나 피신해 형성된 마을이어서 `선비마을`이라는 자부심이 강하고 `절두골` 등 지명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대량마을 당산나무. 수령이 약 400년 된 팽나무로 이 아래서 해마다 음력 10월에 동제를 지낸다.
대량마을 당산나무. 수령이 약 400년 된 팽나무로 이 아래서 해마다 음력 10월에 동제를 지낸다.

생활여건·연결도로 개선 시급해
 고령화와 인구소멸은 벽지인 이 마을에 더 깊고 큰 파도로 밀려온다. 마을주민은 69명(실거주 73명)이며 80% 이상이 60~90대다. 최근 5년간 전입해온 가구는 8가구 12명이지만 이마저도 60대 이상 은퇴한 귀향인이 대부분이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협곡 지형으로 주민들은 지금도 척박한 산비탈을 일궈 짓는 계단식 밭농사(마늘, 시금치, 고사리 등)와 근해어업(통발 등)을 주업으로 한다. 귀향 4년차라는 김영문(69) 개발위원장은 "귀향한 8가구 모두 집안 장남입니다. 은퇴하고 고향과 선산을 지키며 살려고 내려온 셈이지요." 
 50~60년 전만 해도 대량마을이 인구만 500~600명에 어항으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1940년대 축항비가 남아있을 만큼 일찌감치 대어항의 위용을 갖추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서 빗겨나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문화, 교육, 보건의료, 복지시설이 전무하다. 버스 운행도 하루에 4회뿐이라 어르신들이 상주까지 걸어서 오가는 일도 흔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은 정주여건 개선에 대한 열망이 크고 매년 군에도 개선을 요청하고 있다. 오폐수 무단방류와 해양오염을 막기 위한 하수종말처리장, 태풍과 바람 피해를 막아줄 방파제 신설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또 마을 둘레길과 쉼터를 만들어 어항 경관을 조성하고 바래길을 통한 외지인 접근성을 높일 군도 18호선(대량~금전)이 개통되기를 바란다. 그런가 하면 200년 넘게 작성해온 마을계회의록 등 한자로 꼼꼼히 작성된 고문서들과 기록을 영구 보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귀향 5년차인 김범준 이장은 "젊은 전입세대가 없으면 인구가 계속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외지인과 젊은층의 귀촌을 소망하면서도 "마을을 되살릴 방안을 찾고자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농업인구의 고령화에 대응하고 토지 사용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마을 공동재배 품목도 준비하고 있다. 또 현재 1단계 심사를 통과한 2024년 어촌신활력증진사업 계획은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 대량마을은 아름다운 풍광과 천혜의 바다자원을 가꾸고 가공해서 살아가려고 한다. 또 잘 간직해온 마을의 문화자원과 경관자원을 접목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려고 한다. 
 김수연 시민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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