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꽃 피는 남재골 소쿠리마을 오지마을 그 속 담긴 주민들의 생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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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꽃 피는 남재골 소쿠리마을 오지마을 그 속 담긴 주민들의 생활력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11.10 15:48
  • 호수 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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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구생활 16 │ 고현면 동남치마을(박진경 남해군마을공동체지원센터 팀원)

 높아진 가을 하늘을 만끽하며 나선 곳은 고현면 동남치마을이다. 남해군 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난 몇 달간 여러 차례 뵈어온 낯익은 얼굴들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가을 소풍처럼 가볍기만 하다. 동남치마을은 현재 남해군 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찾아가는 마을학교` 사업의 최종단계인 『우리마을 사용설명서』를 제작하고 있다. 책자는 오는 12월 발간 예정이다.
 화창하던 10월 중순, 동남치마을의 이 당(70) 이장, 정기연(77) 개발위원, 조정옥(67) 개발위원을 만났다. 남해는 이모작 지대인 만큼 가을추수철이 끝나자마자 땅 정비를 해야 하고, 곧이어 마늘 파종시기까지 연달아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다. 이 바쁜 농번기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일하기 딱 좋은 날씨에 밭일을 제치고 나와주신 마을 지도자들의 열정이 가을 햇살만큼 따사롭다. <편집자 주>

하늘에서 바라본 고현면 동남치마을 전경이다. 〈사진: 이종호 남해군청 관광정책팀 주무관〉
하늘에서 바라본 고현면 동남치마을 전경이다. 〈사진: 이종호 남해군청 관광정책팀 주무관〉

전쟁도 빗겨갔던 오지마을
 마을 모양이 동북으로 길쭉하다보니 옛날부터 `큰몰·작은몰`, `웃몰·아랫몰` (몰:`마을`의 옛 발음) 이라 부르는 등,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자연스레 물리적 거리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서였을까. 1946년 남치마을은 아랫마을 동남치, 윗마을 북남치로 분리됐다. 분리 전 남치마을은 일제강점기의 수탈이 없었으며 분리 후 한국전쟁 때도 아무런 피해 없이 지나갔다. 놀랍게도 그 이유가 마을 지세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인데다가 마을 입구가 눈에 띄지 않아 존재를 모르고 지나쳐서라고한다. 심지어 마을주민들은 전쟁이 터진 지도 몰랐다는 조정옥(67세) 개발위원의 말이다.
 사전조사를 하던 중 미리 알고 있던 사실, 과장된 표현이겠지 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인터넷은커녕 전기도 길도 없던 시절,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 접근이 없다시피 했던 마을 아니던가. 요즘의 동남치 주민들은 마을 모양을 `소쿠리`라 표현하기도 한다. 

길 만들기 당시 사용했던 지게 사진이다.
길 만들기 당시 사용했던 지게 사진이다.

1973년, 늦은 전기 사용
 동남치는 두 번의 큰 전쟁도 빗겨갈 정도로 꽁꽁 숨겨진 지형지세로 인해 1973년이 돼서야 남해군을 통틀어 가장 늦은 시기에 전기가 들어올 정도의 오지마을이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전기가 들어온 때는 1887년이었는데, 이보다 90년가량 늦은 시기다. 덩치로는 못 덤비는 다른 마을 친구들이 "너 사는 마을은 전기도 안 들어오지?!"하고 놀리면, 친구들 사이에 체격 좋고 힘 좋던 학창시절의 조정옥 씨는 어린마음에 자존심이 상해 일단 주먹다짐으로 입을 닫게 만들었다는 웃픈 추억을 들려준다. 여전히 건장한 체격으로 호탕하게 웃는 모습에 그 시절 소년들의 개구진 실랑이 장면이 떠오르는 듯하다.

이 당 동남치마을 이장                조정옥 동남치마을 개발위원
                     이 당 동남치마을 이장                                      조정옥 동남치마을 개발위원

무명저고리 행렬
하얗게 이어지던 보부상 길

 `남재(남치의 옛말)`를 지나던 옛 길은 노량에서 들어오던 보부상들이 남해읍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이었다. 하얀 무명한복에 봇짐을 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이 길을 오갔던지, 멀리서 보면 길 전체가 하얀색 긴 띠로 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던 길과 마을의 번성은 보부상과 함께 사라졌고, 마을 빗겨나가는 넓고 편편한 새 도로가 개통되면서 통행하는 사람마저 없어지고 이제는 작은 오솔길로만 남았다.

동남치마을에서 바라본 남치저수지 데크길이다.
동남치마을에서 바라본 남치저수지 데크길이다.

십시일반 내 땅 내놓고
지게 짐 지어 손수 만든 길

 명맥 끊긴 보부상 길로 인해 길의 소중함을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나라에서 도로 조성에 많은 지원을 해주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도 전, 주민 주도로 길 만들기를 시도했고 개울 따라 이어지는 길 공사에 착수했다. 개울 근처 땅을 소유한 주민들은 마을과 이웃을 위해 십시일반 땅을 헌납했다. 또한 주민 모두 돌아가며 지게 등짐지고 바위와 흙을 지어 날라 마을길을 완성했다.
 이 길, 수 십 년 흐른 지금 누구의 희생이었는지 알 바 없이 운전대 잡고 부르릉 달려가면 그만이지만, 오랜 세월동안 마을 바탕과 기반을 다지기 위해 내 것을 내어놓고 노력했을 그 누군가의 노고와 땀방울이라는 대목에서 잠시 생각이 멈춰 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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