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가난 속 좌절하지 않고 이겨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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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가난 속 좌절하지 않고 이겨낸 역사
  • 류민현 시민기자
  • 승인 2023.11.24 10:57
  • 호수 8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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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일출 전 법무사

80대 중반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평생 삶을 담은 인생유전(人生流轉), 「물 따라 구름 따라 남해에 살며」라는 자서전을 써서 세상에 내어놓은 어른이 있다. 그는 남에게 내세울 것은 없지만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서전을 쓴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에 지난 19일 책의 저자인 김일출 전 법무사를 만나 자서전을 쓴 소회와 철학과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김일출 전 법무사가 자신의 자서전 「물따라 구름따라 남해에 살며」를 펴냈다.
김일출 전 법무사가 자신의 자서전 「물따라 구름따라 남해에 살며」를 펴냈다.

Q. 자신의 일생을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나는 1937년 일본 야마구찌 현 오노다시에서 3남 4녀 칠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서 초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1945년에 해방이 되어 가족과 함께 부모님의 고향인 남해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뒤에 아버지는 돈 벌러 일본으로 다시 떠났고 집도 땅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이 가난과 싸우면서 좌절과 절망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우연한 인연과 행운으로 다시 기회를 잡고 부활하여 교사, 법원 공무원을 거쳐서 26년여 간 부산과 남해에서 법무사 생활을 했습니다. 80대 중반에 이른 2022년 12월 법무사 문을 닫고 요즘은 실버합창단 활동 등 여가를 즐기고 건강을 챙기며 지내고 있습니다.

「물 따라 구름 따라 남해에 살며」 책의 모습이다.
「물 따라 구름 따라 남해에 살며」 책의 모습이다.

Q. 자서전을 쓴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A. 남에게 내세울 것은 없지만 내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궂은일이든 좋은 일이든 진솔하게 써서 세상에 내어놓았습니다. 80이 넘은 고령이라서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일생을 정리하고 자서전을 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큰딸 유미의 끈질긴 권유가 있었고 딸들의 격려와 뒷받침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쓰다 보니 나의 역사와 동시에 가족의 역사를 쓰게 되어서 가족의 소중한 의미를 깊이 깨닫는 고마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Q. 유청소년 시절에 가정이 몹시 가난했다고 했습니다. 본인에게 가난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 한마디로 말하면 나의 인생은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가난을 이겨낸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건너왔을 때는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웠고 너무 가난하여 외가에 얹혀서 4년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중학교 진학 자격 국가 고사가 전국에서 시행되었는데 남해군 6학년 전체에서 1등(박희태 국회의장 2등)을 하고도 가난하여 진학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삼동면 동천리 도가머리에서 남해중학교까지 왕복 80리 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중 2학년 때는 수업료가 없어서 자퇴를 하고 멸치 장사 등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남해수산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영문학과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서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가난이 나를 더 강하게 했고 나를 일찍 철들게 했습니다.

김일출(빨간 동그라미) 전 법무사가 현직에 있을 당시 모습이다.
김일출(빨간 동그라미) 전 법무사가 현직에 있을 당시 모습이다.

Q. 법무직을 오래 하셔서 법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합니다. 그게 법의 이상입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법의 피해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법이 우선이냐, 정의가 우선이냐` 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당연히 정의가 우선입니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법이 존재합니다. 법은 항상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기여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독이 됩니다. 법이 역사를 뒷걸음질 치게 해서는 안 되고, 법이 현실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고쳐야 합니다. 이게 법 제정과 운용의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Q. 교사도 하시고 법원 공무원 등도 하셨지만 법무사 직을 가장 오래 하셨습니다. 자신은 어떤 법무사였나요?
A. 민법 제2조 1항에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라는 `신의성실(信義誠實)`의 원칙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늘 새기고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이 말씀과 더불어 `정도역행(正道力行)`의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바른 길을 힘써 행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음성적인 뒷거래나 비정상적인 거래를 경계하였고 공정, 신속, 정확한 일처리를 업무의 생명으로 여기며 일했습니다. 여러 어려운 사정으로 찾아온 노인들이 많았는데 업무처리를 끝내고 집에까지 차로 모시다 들이는 일도 많았습니다. 사람 냄새가 나는 법무사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Q. 법무를 수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들려주시지요?
A. 1990년 초에 부산지방법원 집행관으로 3년 정도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건물철거집행사건이 배당되어서 노부부가 사는 기와집을 철거한 적이 있습니다. 필요한 절차를 다 거치고 공무를 집행했지만 철거하는 현장에서 망연자실하며 기절을 했던 노부부를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공무의 책임과 인간적인 배려 사이의 고뇌가 컸습니다. 
 보람이 있었던 일은 재산상속문제로 가족끼리 분란이 일어나서 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에게 법정지분을 근거로 이해를 시키고 설득하여 분쟁을 해결했을 때 보람이 있었습니다. 또 부모님의 재산을 형제들이 협의하여 다른 형제들의 몫까지 합쳐서 장애인 형제에게 몰아주는 아름다운 가정을 보았는데 보기가 좋았습니다. 
 
Q. 끝으로 지역의 원로로서 군민들에게 하실 말씀은?
A. 2차 세계대전 중·일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나서 1945년 8·15 해방, 1950년 6·25 전쟁, 4·19, 5·16, 10·26, 5·18, 6·29 등 민주화 운동과 민주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한국현대사의 격변기를 지나오면서 85여 년의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이 모두가 흘러온 추억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나는 가족과 이웃과 고향 남해군민들과 함께 한 나입니다. 고개 숙여 절하며 감사드립니다.

 류민현 시민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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