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영원한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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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영원한 세 가지
  • 남해타임즈
  • 승인 2024.01.02 11:13
  • 호수 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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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차상(산문) | 남해제일고 1학년 정지윤

 세상 그 무엇과도 감히 바꿀 수 없는 우리 할아버지. 이렇게 글로 만나게 되어 너무나 반갑습니다. 요즘같이 바람이 차디찬 하루에도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것은 여전히 변함없네요. 

 제가 할아버지에게 이런 상소문을 쓰려고 결심한 이유는 물론 이번 백일장의 주제 덕분이지만, 동시에 이번 기회를 통해 여태껏 숨겨왔던, 꾹꾹 눌러 담은 제 진심을 여기서 다 풀고 가려 합니다. 이때 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정말. 오늘부로 할아버지에 대한 한 사람의 마음이 잘 정리될 거라 믿습니다. 제가 무엇을 요구하고 싶은 건지 잘 헤아려주시길 바랍니다.

 첫째,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렸을 적 모난 짓을 하고 아무리 떼를 써도 전부 "귀여운 내 똥강아지"라며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습니다. 그때의 저는 분명 할아버지라는 백지에 청승을 그렸고, 궁상으로 책을 입혔는데, 그 그림의 마지막은 항상 당신의 아름다운 미소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를 좀 더 타일러주시고 제 행동을 지적하고, 교정해 주셨더라면, 지금의 저는 좀 더 올곧은 사람이 되었겠지요. 그렇지만 세상에 그 올곧음이 정답은 아니니까, 그렇게 지혜로 대체한 당신의 사랑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적 할아버지에 대한 제 기억은 온통 알록달록한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었습니다. 그 알록달록한 것들 사이 기억나는 것들과,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것들로 나뉘었지만 희미한 기억일지라도 그 덕에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고, 남은 그 기억들에 지금 휩싸여버린 저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너무 커서. 내 행복했던 기억들이 너무나 소중해져 버린 탓에, 이 기억을 잃게 되면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 됩니다.

 제게는 너무 과분한 당신에게, 제가 어떤 존재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고민이자 제 일생을 담은 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제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던, 모든 것이 다 필요없고 나만 있으면 이 세상 더할 나위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행복해 하시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긴 하는데, 저는 그보다 더 멋지고, 좋은 한 사람으로서 자라나고 싶습니다.
 제가 과연 어떤 사람으로 피어야만 저도 만족하고 할아버지께서도 평생 기특해하시며 미소지을 수 있게 될까요. 평생을 고민하게 될 문제가 생겨버린 저로서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지만 먼저 제가 깨닫고 천천히 한 길, 두 길 나아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평생 당신을 떠올리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지만요.

 둘째, 저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당연히 그러실 것을 압니다. 제가 여태껏 봐왔던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 가장 헌신적이고 무슨 일이든 저를 최고로 우선시 해 주셨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사람 일은 모른다잖아요. 과거 제가 태어나기 전에 식물인간이셨던 할아버지께선, 정말 힘들고 그 오랜 마비 기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생각만 해도 제가 다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세상의 해결책의 끝은 사람일까요? 할머니의 변치않는 사랑으로 기적적으로 다시 태어나신, 완치할 수 있었던 할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엄청난 기적과 경험을 가지신 할아버지께서, 할머니가 주셨던 사랑을 제게도 그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제 영원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딱 그만큼만 주시기 바랍니다. 양보다는 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주시는 사랑은 양으로 매길 수 없고, 질로 가치를 판단할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조금 욕심내긴 했지만 여기에 협상은 하지 않을 겁니다. 저도 그만큼 드릴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셋째, 이 모든 것을 저와 영원히 약속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순히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물론 그 이유도 한 부분이긴 하지만), 할아버지는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 참된 지혜를 깨닫게 해주신 분이니까요, 적어도 제겐 한 사람의 일생을 책임지고 있는 분이라 의미해도 틀리지 않는 의미일 만큼, 제 이름에 있는 `지혜로울 지`, 할아버지 이름에 똑같이 있는 `지혜로울 지`글자는 제게 할아버지와의 단연코 끊어낼래야 끊을 수 없는 유대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제 이름을 지으신 할아버지께서 제게 세상에 남긴 한 흔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할아버지가 주신 제 이름처럼 저도 할아버지와 잊을 수 없고 영원히 남길 수 있는 무언가를 꼭 드리고 싶습니다. 영원할 수 있기 위해 할아버지, 저와 영원하겠다는 약속을 해 주시길 간청합니다. 

 만약 우리가 영원하지 않을 것 같다면, 한 글자로는 우리가 함께 하던 `집`을 떠올려 주시고, 두 글자로는 매년 제가 할아버지 생신 때 드렸던 `편지`를 떠올려 주시고, 세 글자로는 우리가 함께 웃고 떠들며 귀여움을 느낄 수 있던 `고양이`를 떠올려 주시고 네 글자로는 `명절연휴`를 기억해주세요. 제가 한 해마다 나이를 먹고 같이 살던 집에서 엄마와 아빠, 오빠와 함께 읍으로 이사갔던 날 더 이상 자고 일어나면 볼 수 없던 그때 이유로,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잘 볼 수 없었죠. 하지만 제가 손꼽아 기다리던 그 명절만은 할아버지와 만나는 짧고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설레서 기다림에 행복했던 순간들을 추억으로 남게 해 주신 할아버지께서는. 이 네 단어를 꼭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할아버지, 사랑한단 말도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큰 것으로 주고 싶은 나의 할아버지여, 당신은 제 일생의 책임자로서 하나뿐인 손녀의 세 가지 약속 정도는 자켜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아버지, 매번 불려도 지겹지 않은 할아버지, 저의 부탁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시겠죠? 함께한 시간이 영원하도록, 꼭 제가 좋은 사람이 되어 돌아갈 테니 할아버지도 저와의 약속과 부탁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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