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부리 앞에서는 평등, 전쟁 나면 지금도 입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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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부리 앞에서는 평등, 전쟁 나면 지금도 입대하겠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6.30 10:17
  • 호수 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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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남기기 9화 방재윤 월남전 참전 유공자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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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망작전·짜빈박전투
전우들을 대거 잃은 전투
방재윤 월남전 참전 유공자가 6·25&월남전 참전 유공자 흔적 남기기 전시회를 위해 기증한 사진들과 물품들이다.
방재윤 월남전 참전 유공자가 6·25&월남전 참전 유공자 흔적 남기기 전시회를 위해 기증한 사진들과 물품들이다.

투망작전 짜빈박전투
 투망작전에 대해 문헌에는 1967년 1월 5일부터 1월 10일까지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지만, 방 유공자는 1년 전인 1966년 1월 10일이라고 확신했다. 이 기사는 방 유공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기록이니 그의 기억에 따르기로 한다.
 투망작전은 해병대 청룡여단이 베트남 중부 지역인 쭈라이에 전술책임 평정지역을 확대할 목적으로 실시한 작전으로서, 부대별 여건에 따라 소규모 단위로 작전을 실시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이 지역에는 베트콩이 자주 출몰해 교전 가능성도 매우 높았던 곳이다.
 방 유공자는 "우리 10중대도 작전을 나갔는데 600고지 정도 되는 산에 올랐을 때인가 오후 5시쯤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철수 명령을 받았다"며 "그런데 근처 다른 고지(197)에 연대 수준의 대규모 베트콩부대가 매복하고 있었지. 쏟아지는 총알과 수류탄에 근처 냇가로 숨어서 나무뿌리를 붙잡고 밤을 샜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데 베트콩들이 우리 전우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 사살까지 하더라고, 그 전투에서 중대장도 전사했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날이 밝으니까 헬기 소리가 났고, 해병대원들의 소리가 들려서 나오니 무기는 물론이고 전투복 뭐 전부 다 뺐어갔더라고"라며 "주위를 둘러보니 7명만 살았지"라며 "근데 웃기게도, 전우들의 시체가 쌓여있는 그 상황에서도 씨레이션(미군 전투식량)이 넘어 가더라"라고 말하고 묘한 정적이 흘렀다.
 월남전에서 한국군을 통틀어 단일 전투로는 최고의 피해를 입은 짜빈박전투의 공식 기록에는 해병대 전사 32명(후송 중 전사자 포함), 부상 30명, 적군 사살 18명의 전과로 남아있다.
 이후 약 1개월 뒤인 2월 14일과 15일, 해병대 청룡여단 3대대 11중대가 짜빈동전투에서 월맹군 2개 연대 공격을 격퇴하고 승리해 설욕하기도 했다.
 
2개월 연장된 군 생활
 월남에서 귀국할 수 있는 건 시기와 조건이 맞아야 가능했다. 전역 날짜가 다가왔지만 방 유공자는 곧바로 제대할 수 없었고, 2개월이 흘러 한국행 배에 오를 수 있었다.
 이에 앞서 그동안 해병대는 아니 해병대 164기는 육군과 차별을 많이 당해왔기 때문에 서러움이 많았다는 방 유공자. 대표적인 예시가 귀국박스와 전역증이다. 그는 "전역 시기 전에 다른 부대 사람들은 큰 상자에 이것저것 들고 갈 것을 사서 담는 걸 알게 됐지. 우리 중대는 옷 몇 가지하고 씨레이션, 커피만 있었는데 누구는 가전제품에 기념될만한 걸 챙기는 거야"라며 "그래서 간부에게 강하게 따졌더니 우리도 큰 상자는 아니더라도 중간 정도 크기의 상자를 받을 수 있었지"라고 말했다. 
 한국에 도착한 방 유공자. 육군의 전역증은 수첩만큼 크고 멋이 나는데 해병대 전역증은 명함보다 작았다고 한다. "목숨 바쳐서 전쟁 치르고 돌아왔는데 보상이 겨우 이거라니 정말 서러웠다"며 "이 종이 한 장 받으려고 이 고생을 했나 싶었다"고 밝혔다. 아쉽게도 그 전역증은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
 이후 방 유공자는 1966년 9월(추정), 약 2년 5개월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몇 개월 동안 적의 사살, 전우들의 전사 등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가 남해로 오게 된 까닭은 바로, 방 유공자의 아내인 최연홍(남해읍 선소마을 출신) 씨를 만났기 때문인데, 그와 결혼하고 오래 전 처가인 남해읍 선소마을에 터를 잡게 됐다.
 방 유공자는 "언젠가 아내와 베트남에 여행을 가게 됐는데, 여행보다 옛 기억에 가슴이 시렸다"며 "투망작전 지역은 못 가보고, 다낭에서 눈물을 훔치고 돌아왔다"고 밝혔다.
 또한 방 유공자는 해병대 후배들에게 "모르면 알 때까지, 지면 이길 때까지,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병대의 정신만 잊지 않고 군 생활을 착실히 수행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 같이 힘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 피해를 보기 때문에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그러나, 만약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현역으로 자원입대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방 유공자는 "총부리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며 "그러나, 약자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에 국가에서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은 진심"이라고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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