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촌놈, 해병대의 의리와 남자다움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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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촌놈, 해병대의 의리와 남자다움에 빠지다
  • 전병권 기자
  • 승인 2022.05.26 10:38
  • 호수 7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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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남기기 6화 안준영 월남전 참전 유공자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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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겪으며 가족도, 집도 잃어
아버지의 반대 무릅쓰고 해병대 입대
지난 19일 이동면 화계마을에 위치한 안준영(왼쪽) 월남전 참전 유공자의 집을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19일 이동면 화계마을에 위치한 안준영 월남전 참전 유공자의 집을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울 출생, 6·25 피난
피난 중 가족을 잃다

 안준영(76·安俊英) 월남전 참전 유공자는 지금까지 본지에서 소개한 다른 유공자들과는 달리 서울 출생으로 남해군에 정착한 지는 8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만큼 경험도 남다르다. 
 안 유공자는 안정용·구우순 부부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7년 2월 14일생인 안 유공자는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외할아버지·외할머니와 함께 화목한 대농의 자식으로 비교적 유복한 시절을 보냈다. 
 행복도 잠시, 안 유공자가 4살이 되던 해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다. 아버지는 군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지역을 거쳐 경주에 머물게 됐고, 외할머니는 자신의 딸이 있던 춘천으로, 나머지 가족들은 북한군을 피해 남쪽으로 향하게 된다. 목적지는 외할아버지 친척들이 있던 용인시. 그렇게 도착한 용인 친척 집에서 지내는 동안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며 서울 수복에 성공했다.
 때는 1950년 9월 28일, 바로 `9·28서울수복`이다.
 더 이상 친척들에게 신세를 질 수 없어, 곧바로 외할아버지는 서울로 돌아갈 결단을 내린다. 그렇게 서울로 향했지만 미군에게 번번이 막히기 일쑤였다. 세 번째 시도, 농로 길을 통해 서울 집으로 향하던 도중 다시 미군에게 발각됐다. 친척집으로 발걸음을 돌리자 얼마 후 지프차가 안 유공자의 가족을 쫓아왔다. 그리고 흑인 미군이 외할아버지에게 바로 총을 쏜 것. 시체가 된 외할아버지는 미군들의 군화발에 채여 논두렁에 빠졌다. 
 4세의 안 유공자가 또렷이 기억하는 장면이다.
 다시 미군들에 의해 친척집으로 향하던 지프차 안, 시체도 거두지 못한 채 갈 수 없어 안 유공자의 어머니는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러자 미군들은 어머니를 죽이지는 않고 개머리판으로 엉덩이를 때렸다. 이 당시 안 유공자의 어머니는 둘째를 임신한 상황이라 배가 불러있던 덕분이었다.
 안 유공자는 "세월이 흘러서 보면 굳이 서울 집으로 가려고 했을까 싶다"며 "나는 완전 어렸기 때문에 맞지는 않았는데, 외할아버지, 어머니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이후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서울 집으로 도착한 기억이 남아 있다.
 
남은 가족, 아버지를 찾아서
전쟁 중 사라진 집을 찾아서

 4~5세로 기억하는 그때, 안 유공자네는 아버지와 연락이 닿아 아버지가 있던 경주로 향하게 됐다. 고행의 시작이다.
 외할머니, 어머니, 안 유공자, 안 유공자 동생 4명이 간단한 보자기들을 싸서 걷기를 시작했다. 금호동에서 걸어 뚝섬에 도착, 뚝섬에서 한강을 가로질러 압구정동에 도착한다. 당시 뚝섬의 한강은 깊이가 굉장히 얕았기 때문에 횡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걸 떠나서도 한강다리는 이미 폭파돼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게 압구정동에서 다시 용인, 수원, 대구까지 무사히 도착한 안 유공자네 가족. 
 안 유공자는 "완전 어렸기 때문에 피난을 가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둑에서 잔 기억이 난다"며 "비행기가 우리 위로 지나갈 때면 어른들은 재빠르게 엎드리라며 나와 동생을 보호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아이 입장에서 비행기가 얼마나 신기했겠느냐"라고 회상했다.
 경주에 도착하자, 아버지의 사촌이 반겨준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온다고 정말 고생했다며 어른들이 끌어안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촌의 안내를 받아 아버지까지 상봉하게 된 안 유공자네. 곧바로 아버지는 사촌 집 생활을 청산했다. 온가족이 아버지의 사촌 집에 얹혀살 수는 없었던 것. 그렇게 안 유공자 가족들은 경주 내 깊숙한 산골에 위치한 집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경주에서 과수원 관리 일을 했다.
 2~3년이 지났을까? 정전협정 후 서울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경주에서 대구행 기차를 탔고, 대구에서 서울역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계약된 일이 있었기에 몇 개월 뒤에 복귀하게 된다.
 서울 집에 도착하자, 터만 남은 상태. 황당함 그 자체다.
 안 유공자는 "동네에서는 우리 가족이 전부 전쟁 통에 죽었다고 했다"며 "누가, 무슨 권한으로, 우리 집을 판매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집이 팔린 후 허물어지고 터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거주할 집이 없는 관계로 금호동 내 방공호에서 보름 정도 지낼 수밖에 없었다"며 "얼마 지나지 않아 복귀한 아버지는 `오죽 먹고 살기 힘들었으면 남의 집을 팔았겠느냐`라며 `이미 허물어진 집이고, 어려운 사람에게 잘 사용됐다고 생각하자`고 말씀하신 게 남아 있다"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렇게 시작된 셋방살이, 다행히 제 나이 때에 청구초등학교에 입학해 이후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활달한 학창시절을 보낸다.
 
해병대를 꿈꾸는 소년
 중학생 때로 기억하는 어느 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귀했던 기름. 용산~태릉 구간 중 철로 옆에는 미군들이 사용하는 기름을 수송하는 기름관이 있었고, 밤만 되면 이 기름을 몰래 빼서 도둑질하는 사람이 많았던 때다. 
 안 유공자는 "언젠가, 서빙고~한남동으로 이어지는 기름관에도 역시 도둑이 들었다. 그런데, 도둑들과 이들을 저지하는 경비원과 맞붙게 됐다"며 "다른 경비와 같은 사람들이 오게 됐는데 아주 손쉽게 도둑들을 제압하고 기름을 지킬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알고 보니 이들은 전부 현역 해병대 또는 전역한 해병대였다"며 "남자들의 의리와 도둑들로부터 재산을 지켜내는 모습에 군대를 가면 꼭 해병대를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해병대 입대의 이유를 밝혔다.
 안 유공자가 18세가 되던 해, 아버지로부터 해병대 자원입대를 얘기하자 곧바로 퇴짜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병대 입대를 신청했고 합격했지만, 아버지에게 발각돼 입대하지 못했다. 두 번째 시도도 아버지로 인해 실패, 결국 20세가 되던 1967년 2월의 어느 날 세 번째 시도 만에 아버지를 피해 저녁에 몰래 용산역으로 향했다. 훈련소가 있는 진해로 내려가기 위함이었다. 
 안 유공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들하고 아버지가 용산역에 나를 배웅해주러 나왔다"며 "두 번이나 아버지에게 해병대를 가고 싶다고 얘기했었고, 성인이 됐으니 또 군대도 가야 하니 아마 못 이기는 척 입대를 허락하신 것 같다"고 아버지의 입장을 헤아렸다.
 해병대 187기 군번은 9340586.
 이때 당시 해병대 짝수 기수와 홀수 기수는 큰 차이가 있었다. 짝수 기수는 육군에서 차출한 병사들이 절반정도 섞여 있었고, 홀수 기수는 전부 자원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훈련의 강도가 더 가혹했다.
 안 유공자는 "훈련받으면서 앉아본 기억이 없다. 2월에 입대했기 때문에 바닷바람과 함께 추위가 기억에 남는다"며 "팔다리가 성할 날이 없었고, 속옷바람으로 겨울바다에 자주 입수했다"고 당시 훈련소 상황을 묘사했다. 
 특히 당시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훈련소에 1~2주 더 오래 있어서 8주 정도 훈련소 생활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는 안 유공자. 그렇게 소원하던 해병대였지만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훈련소 생활을 버티고 소총수로 보직을 받아 해병대전투교육훈련장(상남교육장)으로 향한다. 실전과 같은 훈련을 받는 곳. 식사하고 취침할 때 빼고는 전부 뛰어야 했다. 장교, 부사관, 병사할 것 없이 모두가 본보기가 돼야 하기 때문에 뛸 수밖에 없었고 훈련 강도는 더 높았다.
 지옥에서 4주를 버티고 드디어 포항에 소재한 자대를 배치 받게 된 안 유공자. 이병 안준영의 소속은 5연대 1대대 1중대였다. 
 안준영 유공자의 자대생활과 월남전 참전, 그 이후의 일화는 지면 관계상 다음 호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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